출처도 안 밝힌 많은 인용이 있는 일학년 때 쓴 글입니다. 음, 미숙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네 멋대로 해라. (원제는 숨막힘)
1. 서론
"네 멋대로 해라"는 고다르의 장편 데뷔작으로 영화사에서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이나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과 동급으로 다루어지는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이 영화는 60년대 프랑스에서 있었던 68 학생 혁명이 일어날 당시 젊은이들의 청년 문화를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고다르의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의 예술적, 예술 외적 상황과 이 영화 자체에 관한 분석, 고다르의 관한 몇 가지 사항들 그리고 끝으로 이 영화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해 볼까한다.
2.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
모든 예술은 그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에 상황을 반영한다는 명제는 적어도 고다르에게 있어서는 참이다. 고다르는 데뷰 이래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해나나는 작업을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서 해왔다. 그렇다면 분명 "네 멋대로 해라"가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을 알아보는 것은 올바른 영화의 이해를 위해서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철학적 상황과 예술적 상황만을 이야기해보겠다.
우선 당시의 철학적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고다르가 소르본느를 다니던 시절은 헤겔 사상을 기반으로 했던 사르트르와 메틀로 퐁티의 실존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 결과 고다르의 영화에선 헤겔의 변증법적 개념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고다르에 관한 최초의 연구서를 낸 장 콜레는 고다르 영화의 핵심이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의 변증법적 작용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 근거로 고다르의 영화에는 수많은 모순의 요소들과 변화의 요소들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고다르 자신이 자신은 변증법을 믿는다고 말했다는 점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예술계의 흐름을 살펴본다면 특징적인 현상 두 가지로 앙티로만과 앙티테아트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앙티로만은 소설 자체에 의한 소설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객관적 사실 묘사와 합리적 심리 묘사를 거부하며, 뚜렷한 줄거리 없이 타인과 외계와의 단절을 그린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앙티테아트르는 줄거리와 인물의 심리 등이 불분명하며, 인물의 무의미한 행동의 반복을 통해 인간존재의 부조리와 불안감을 표현했으며, 난센스와 코믹한 톤을 이용해 현대인의 불안,공포, 고독 등이 독특하게 극적인 표현을 이루는 연극의 형태이다. 이러한 앙티로만과 앙티테아트르의 성격은 고다르의 영화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예를 들면 주인공 남자의 입술을 문지르는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거나 인간적 고독을 감당치 못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 주인공의 행동, 그리고 주인공 여자의 돌발적인 경찰에의 신고 등은 모두 전술한 앙티로만과 앙티테아트르의 성격과 일치한 것이다.
3. "네 멋대로 해라"의 분석과 고다르의 영화의 전반적 특성
1) 카메라와 편집
"네 멋대로 해라"는 간단한 줄거리의 영화이다. 즉 주인공 미셸이 자동차를 훔쳐 타고 가다가 우연히 경찰을 죽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인과 도피행을 벌이다가 그녀의 고발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단순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그 존재 가치를 굳건히 지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시로선 파격이었던 카메라의 움직임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할리우드 B급 영화를 재발견한 누벨 바그 감독들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들의 지닌 파괴력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카메라의 다양한 기법일 것이다.
실제로 "네 멋대로 해라" 공개 당시 사람들은 고다르의 빠른 편집 스타일에 충격 받고, 흥분했다. 그는 당시에 이렇게 말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지루할 정도로 길 때 그 대화의 중간중간을 잘라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번 해 보았더니 그 효과가 놀라웠다. 그래서 이 방식을 계속 사용했다." 확실히 점프 커트는 영화의 속도감을 높여 주었고 불필요한 장면 전환 및 매치 쇼트를 모두 제거해 버렸다. 동시에 고다르는 디졸브의 사용도 피했는데("네 멋대로 해라" 에서는 단 한 번만 사용했다.), 속도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다르가 사물을 병치시키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푸랭크 테실린의 영화를 둘러싸고 지적한 것처럼 "미학적인 면에서 만화의 데쿠파주는 영화의 데쿠파주를 몇 년은 앞서가고 있다. 만화의 쇼트 변화는 대담하고 창조적으로 행해지는 반면 오늘날의 프랑스 영화는 이것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네 멋대로 해라'를 지금 다시 보면 유명한 점프 커트는 거의 눈에 뜨지 않을 정도로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이것은 요즈음에는 이 기법이 일반화되어 어느 영화에서나 흔히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개 당시에 화재를 일으킨 들고 찍기 쇼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별반 시선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혁명의 배경엔 고다르가 있었다.
그리고 고다르 영화의 또 다른 기법상의 특징은 블록 구성이다. 장 폴 벨몽도와 진 세버그가 침실 안에서 이끌어 가는 장면은 대단히 길다. 고다르는 이러한 시퀀스 방식을 택함으로써 통일성과 안정성의 표현을 수월하게 하였다. 고다르는 "경멸" 이라는 그의 영화에서는 전체의 3분의 1 길이가 되는 시퀀스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2) 문자 그리고 사운드와 이미지
고다르 영화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문자가 종종 쓰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를들면 미셀의 체포 과정에 나오는 수많은 신문기사들과 네온사인들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진 세버그가 미국인과 만나는 장면을 보면 영어 대화 중에 불어 자막이 나오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비록 영어 대화와 불어 대화가 섞여 쓰여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흔히 잡음으로 대표되는 소리들도 극 중간중간에 부각된다. 즉 등장인물의 대사가 주변의 소리에 의해서 잘 들리지 않거나 안 들리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소리가 영상을 보충한다. 하지만 고다르에게 이미지에 대한 사운드의 독립성은 확실하다. 고다르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의 뉴스릴 필름이 정치적 사건을 논평이나 해석 없이 보여준다고 비난한 적이 있었다. 고다르의 입장에서 사건/영상은 스스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다르에게 있어서 영상은 제국주의적 세계의 영역이고 사운드는 세계를 해석하고 변혁하려는 변증법적 이론의영역이다. 그러므로 사운드의 구성과 이미지의 구성은 미학적 이론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파편적 사운드의 결합은 관객에게 이미지에 거리를 두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즉 영상에 종속된 사운드에 또다른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3) 다큐멘타리적 성격
고다르 영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앞서 서론서도 이야기한데로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도 이러한 다큐멘타리적 성격은 잘 드러난다. 즉 소설가를 인터뷰하는 장면은 다큐멘터리의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또한 앞서의 긴 시퀀스 역시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적 성격은 고다르 자신의 현실성에 대한 집착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고다르는 "알파빌"의 촬영에서 "사실에 충실"하기 위해서 조명 없이 어두운 장면을 찍기도 했으며 3번째 장편부터는 동시 녹음을 해왔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고대 로마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자신은 라틴어를 말하는 배우를 고집할 것이기에 절대로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고다르의 이러한 사실에의 집착은 그가 흐르는 시간의 한 순간을 영원히 고정시키는데 흥미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이것을 고다르가 그의 영화를 관객에게 하나의 현실로 제시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고다르는 오히려 그의 영화에서 끊임없이 관객에서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있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이는 고다르가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을 영화에 도입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확실히 미셀이 관객에게 이야기하는 초반부의 장면같은 것을 보면 브레이트의 소외효과의 영향이 엿보인다.
4. 장 뤽 고다르
고다르는 193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르본느에서 민족학 과정을 수료한 후 1950년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프랑스와 트뤼포 등 후에 누벨바그의 주요감독이 된 이들과 함께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씨네마"에서 평론가로 활동하며 몇 편의 단편 영화를 찍은 뒤 1960년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고다르는 로빈 우드에 의하면 "만일 세계 영화의 발전에 준 영향의 크기가 그 척도로 된다면, 고다르는 지난 30년간의 영화사를 통해 가장 중요한 작가일 것"이다. 고다르가 누벨 바그 시대, 그리고 1968년 이 후의 '급진적 정치 영화'의 시기를 통해 이룩한 성과들은 동시대 다른 어떤 작가도 도전할 수 없는 것이다. 고다르는 일찍이 에이젠슈타인이 이상화했던 '지적 영화' 라는 개념을 영화 속에서 구체화 시켰으며, 동시에 영화 미학의 측면에서 그때까지 지배적 전통으로 확립되어 온 '몽타주 이론'과 앙드레 바쟁의 '공간의 깊이 이론' 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였다. 한편 '지가 베르토프 집단' 시절에는 체제 바깥에서의 영화 제작을 통해 16mm 영화가 지닌 현실 참여적 가능성을 극대화 했으며, 이를 통해 '대항 영화'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구체적인 방법론의 측면에서도 그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라는 대상에 이데올로기를 부여하고, 성과 정치, 또는 멜로드라마와 정치를 결합시킴으로써 영화의 형식 영역을 넓혀 놓았다. 고다르 이후에 비로소 현대 영화가 시작된 것이다.
5.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 결론을 대신하여
그럼 1996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고다르의 영화, 그것도 데뷰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고다르의 영화는 아직도 분명한 가치를 지니고있다. 이 가치는 단순히 영화사적 의의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고다르는 현대 소비 자본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소외를 다루었으며 자본이라는 체계에 짓눌 리는 우리에게 자본이라는 것에 대해, 권력이라는 것에 대해, 성 그리고 광의의 의미에서의 매춘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여유를 준다. 그리고 고다르는 아직도 할리우드의 내러티브 중심의 영화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충격과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주고 있다.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그 재기넘치고 신선한 대화, 그리고 그 내러티브 자체도 우리에게 생각하는 즐거움과 황당한 기쁨을 주고 있다.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