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말러의 대지의 노래.
몇 년 전부터 봄을 느낄 때마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가 떠오른다. 강의를 들으러 기숙사를 나서며 기숙사 앞 화단을 물들인 꽃을 보면서,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봄의 노곤함을 느끼면서, 그리고 그러한 봄의 풍경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질 때, 말러의 노래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사실 이 곡이 봄을 연상시킬만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한 악장(5악장)이 봄의 풍경을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가을을 그린 2악장도 있고, 난 5악장을 특별히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또한 이 곡의 주제는 바로 죽음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죽음을 노래한 이 곡을 떠올리는 취향은 내가 돌아보아도 유별나다면 조금 유별난 것 같다.
대지의 노래는 죽음을 노래한다. 1악장의 초반 느닷없이 "삶은 어둡고, 죽음도 어둡다" 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6악장, 고별, "서산에 석양은 지고.."로 시작해 알토의 흐느끼는듯한 영원히..영원히(ewig)..로 끝맺는 이 곡은 분명 슬픔을 묻고 죽어가는 작곡가 자신의 초상일 것이다. 이러한 곡의 분위기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흙냄새를 맡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고, 그 거부감과 친밀감이 뒤섞인 묘한 기분은 지금까지 나의 손 끝에 그대로 남아 있다.
연주로는 말러의 제자이자 친구였고, 말러 사후 이 곡을 초연한 발터가 3가지 녹음을 남기고 있는데, 특히 두번째 녹음은 꼭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요절한 콘트랄토 가수인 페리어의 가창을 들을 수 있는 음반으로 그녀는 이 녹음에서 이 곡의 염새적인 아름다움을 나직하게 부르고 있다. 하지만 발터의 이 음반은 모노럴이라는 점, 또 콘트랄토에 비해서 테너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 때문에 대지의 노래 전체에 대한 추천 음반으로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준 음반이 크렘페러의 연주로 테너로는 프리츠 분더리히가, 콘트랄토로는 크리스타 루트비히가 노래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대범하고 태연한 크렘페러의 스케일에 명 가수인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음반이다. 특히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경우, 이 곡의 해석은 페리어의 그 것과 대칭이 되는 것으로 그 매력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페리어의 노래에 젖은 사람에게 페리어의 자리를 대신할 가수란 없을 것이다. 아마 영원히. 단순히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노래만이라면 카라얀반에서의 노래가 더 절창인 듯 싶다.
카라얀은 이 곡의 관능적인 성격을 부각시켜서 이 곡의 쓸쓸한 아름다움을 그 답게 아주 아름답게 묘사했다. 끝으로 번스타인은 바이톤 피셔-디스타우에게 알토역을 맡겨서 노래하게 했는데, 페리어에 젖은 사람에겐 익숙치 않겠지만, 그는 몇몇 부분에서 남성 가수로서의 장점을 부각시킨 성공적인 해석을 남겼다. 번스타인의 연주는 카라얀과는 달리 그의 말러 특유의 애절함과 흘러 넘치는 감정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비정규 음반을 들었었지만, 녹음 데이터마저 없는 이 녹음으로 클라이버의 연주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이 밖에 듣고 싶은 연주로는 번스타인이 루트비히와 남긴 녹음과 래틀의 연주이다.
2000.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