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5번, 7번에 코니올란 서곡, 피델리오 서곡 의 79분이 넘는 커플링. 연주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리츠 라이너. 녹음은 그 유명한 리빙 스테레오. 값은 9000원
정말 명반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음반이다. 이른바 명반병에서 어느정도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음반은 정말 사둘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건 확인만으로도..
아직 세번밖에 못 들었으므로 성급한 판단일 수 있지만, 들어본 결과는 확실히 만족스럽다. 일단 5번에 대해서 몇자 적자면, 아마도 우리 지휘자 선생님이 전범으로 삼은 연주가 이 연주가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돋보이고, 현의 저음부가 아주 잘 살아있지만(이 연주를 들으면 이 곡을 연주할 당시에 첼로파트석에서 들었던 우리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떠오른다. 첼로의 멜로디는 거의 항상 포착 가능하며, 해서 내 귀에 이 연주는 첼로 소리에 다른 파트가 덧부쳐지는 것으로 들린다) 이것이 곡을 둔중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체적인 인상은 날렵하다..는 것이다. 가벼운 날렵함이 아니라 어느 정도 모멘텀을 갖춘 그러한 날렵함. 또한 녹음 탓일수도 있지만, 관의 - 특히 목관 - 선명한 부각과 같은 뚜렷한 악기의 색상은 이러한 해석을 잘 보완한다. 왜냐하면 선이 굻고 뚜렷하다는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7번의 경우는 2악장의 소극적인 해석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역시 상당히 잘 짜여진 연주다. 템포도 4악장의 질주에 맞추어 잘 설정되었고, 역시 오케스트레이션의 뚜렷함이 청명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클라이버의 그 깔끔한 정리에 더 정이 간 것은 사실이다.
분명 카라얀류의 달변은 아니지만, 상당한 매력이 숨어있는 연주임에는 틀림없고, 아마 라이벌반인 클라이버의 것보다 내용면에서 뒤지지 않는 듯하다(클라이버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입니다). 7번은 클라이버가 한 수 위라고 해도 5번은 클라이버식의 가벼운 질주보다는 라이너의 묵직한 접근을 더 좋아하는 이가 많으리라는 생각이다. 5&7을 단 한장을 산다면 심각하게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음반. 클라이버인가 라이너인가...(프루트벵글러 역시 같은 커플링이지만, 그의 것은 클라이버나 라이너와는 다른 범주에서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고, 이는 틸레만의 신보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예와 전설..) 우리나라에선 시카고 심포니보다는 빈필을 고를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99.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