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듀인줄 알고있던 레포트가 알고보니 모래라고 하는군요. 멍잡고 있다가 글 하나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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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고전음악
1. 베토벤 교향곡 5번
첫 곡으로 고르게 된 것은 내가 처음으로 감상을 시작한 고전음악인 이른바 "운명"이다. 너무나 유명한 곡이므로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지면 낭비일테니, 곡의 성립사나 악보 판본을 비교 분석할 정도의 자료가 없는 지금으로선(온라인 상이다) 그저 좋았던 연주를 돌아볼 수 밖에는 없을 듯하다.
베토벤 교향곡을 음반을 통해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모노랄의 거장들의 연주를 듣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현대의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것이며, 마지막 한 가지는 정격 연주에 의한 연주를 듣는 것이다(정격 연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은 내 홈페이지에 링크된 Early Music 이란 사이트에 가보시면 국내 필자가 쓴 글 중 최고 수준의 글을 읽으실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방법 모두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들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분야를 폄하하거나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선 모노랄로는 지금까지 해석상의 기준으로 비교되고 있는 푸르트벵글러와 토스카니니의 연주를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다. 흔히 푸르트벵글러를 디오니소스적인 접근으로, 토스카니니를 아폴론적인 접근으로 이야기들 하지만, 이러한 고정 관념에는 사실 일본 평론가들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듯 싶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과 달리 푸르트벵글러의 경우 그의 스튜디오반은 상당히 잠잠한 편이며, 토스카니니 역시 흔히 알려진 대로 인 템포만을 고집한 고집장이는 아니다(사실 그의 연주는 너무나 다채로운 템포의 악센트의 변화를 특징으로 하기 까지 한다). 대표적인 예로서 토스카니니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녹음할 때(1950년대의 전집에 포함된 녹음이 아니라 1941년 녹음이다) 4악장에서 악보에도 없는 비올라의 싱코페이션과 팀파니의 타격을 가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했다.
필자가 들어본 이들의 연주는 푸르트벵글러가 3종, 토스카니니가 1종이 있다. 푸르트벵글러는 1947년 타티아나 플라스트에서의 복귀 연주회 실황(DG)과 EMI에서의 스튜디오 녹음,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중의 라이브 연주(DG)를 그리고 토스카니니는 RCA에서 새로 나온 전집에 들어있는 녹음인데, 아마도 이것들은 그들의 제 5번 연주 중 가장 대표적인 음반들일 것이다. 오랜 시간의 심판을 이겨내면서 이른바 명연으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은 연주들인 만큼 모두 상당히 훌륭한 연주들이어서 단정적인 비교가 곤란한 감은 있지만, 만약에 한 장을 골라야 한다면 푸르트벵글러의 47년반을 고르고 싶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어지는 긴장감을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아첼레란도와 루바토로 유지해서 종악장에서 해방을 노래하며 내달리는 이 연주는 오늘날의 지휘자들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물론 앙상블은 나머지 2개의 스튜디오 녹음(EMI, RCA)이 더 뛰어나고, 연주의 스케일의 경우를 비교해도 EMI반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은 지적해둔다.
끝으로 바인가르트너의 연주는 꼭 구해서 들어보고 싶은 전집이며 니키쉬의 1911년 녹음은 상당히 인상적이기는 했으나 음질상의 난점으로 인해 평가에서 제외했다.
스테레오 시대의 현대 오케스트라에 의한 연주로 필자가 들어본 연주는 다음과 같다. 카라얀(DG에서의 60년대, 70년대 녹음), 셀(Sony), 뵘(DG), 클라이버(DG), 라이너(RCA). 모던 악기에 의한 연주는 그 동안의 관습적 동질성 때문에 보통 감상자에게는 가장 친숙한 연주이고, 그 동안 엄청난 수의 연주가 행해져왔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기에 가장 다채로운 연주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음반 선정에 있어서 큰 고민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반드시 들어두어야 할 연주가 바로 카라얀의 연주다. 그는 상당히 투명하게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현을 강조한 목관은 가늘고 곱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금관과 팀타니 역시 멋지게 분위기를 상승시켜준다. 하지만, 카라얀의 연주는 클라이버나 라이너의 것에 비한다면 너무나 밋밋하고 기름기가 많다.
클라이버는 정말로 놀라운 녹음을 남겨놓았는데, 이 곡을 알고 있으면서 아직 그의 연주를 안 들어보신 분은 적당히 괜챦은 오디오 시스템에서 꼭 한 번 이 연주를 - 가능하다면 악보와 함께 - 들어보시길 바란다. 이건 정말 엄청나게 호소력이 있는 연주이다. 기존의 다른 연주와 달리 클라이버의 5번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가볍고 날렵하다. 자칫 쳐지기 쉬운 2악장을 리듬감있게 정리했으며 4악장에서는 실황으로 이런 연주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흐트러지는 모습 없이 베토벤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이상적으로 구현해 주었다.
클라이버가 이러한 신선함을 주 무기로 한다면, 라이너는 강경일변도의 우직함이 강점이다. 첫 운명의 주제가 등장하는 부분과 이를 받는 투박한 관의 소리는 라이너가 이 곡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달변은 아니지만, 이 한 곡만으로 필자는 라이너라는 이름을 신뢰하게 되었다.
뵘은 다분히 회고록풍(인용한 표현)이다. 다소 발이 무겁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이가 담긴 명연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엄한 모습은 클라이버의 재기나 카라얀의 깔끔함이 그리워지게 만들기도 한다.
셀의 연주는 그 특유의 조형성과 즉믈성을 장기로 하고 있지만, 뵘과 마찬가지로 라이너나 클라이버와 비교할 때 옵션이라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두번째 유형의 연주는 연주자 별로 상당히 상이한 점이 많고, 나름대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대가들의 개서이 담긴 노작이 많으므로 어느 하나 경시하기 힘는 연주들임은 부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밖에 꼭 듣고 싶은 연주로는 피터 막의 연주와 신비평판 악보를 채택한 짐머만의 연주가 있다. 아르농쿠르의 경우는 상당히 재미있게 듣기는 했지만, 몇 번 못 들어봤기 때문에 평에서는 제외했다.
정격연주의 경우는 우선 가디너와 브뤼헨의 연주가 쌍벽을 이루고 있다. 접근하기 쉬우나 강렬함이 부족한 것이 브뤼헨이라면 학구적이어서 딱딱한 기분이 들면서도 강렬한 충격을 주는 것이 가디너다. 전집으로서는 가디너의 것을 우선 꼽고 싶지만, 5번에 한정되서라면 냉랭한 가디너보다는 차라리 좀 더 따뜻한 브뤼헨을 꼽고 싶다. 하지만, 가디너의 연주는 베토벤 정격연주의 정당성을 공인케한 역사적인 연주로서 그 기교적 완결성과 해석상의 명쾌함으로 많은 찬사를 - 브뤼헨의 전집보다도 훨씬 더 많은 - 받은 연주라는 점은 밝혀둔다.
이들의 연주 외에도 호그우드의 연주를 들은 바 있지만, 가디너나 브뤼헨의 것보다 앞서서 만들어진 연주여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평범하고 장점이 없는 연주가 되고 말았다. 하노버 밴드나 콜레기움 아우레움의 연주는 그 선구자적인 업적만이 남았을 뿐, 구매상의 강점은 더 이상 없는 듯 하며, 노링턴의 연주는 아직 들어보지를 못 했다.
* 필자의 선택 *
한 장을 산다면 클라이버의 연주를 구입하고 싶다. 정격 연주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입장이지만, 가디너나 브뤼헨의 학구적인 노력이 클라이버의 감각을 못 따른 셈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가디너나 브뤼헨의 감각 역시 뛰어난 것이지만.
2000.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