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도 하기 싫고 공부는 더 하기 싫으니 잠시 딴 소리를..
이번 주 일요일 오후 3시에 Anner Bylsma의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곡목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3,5번이었고, 티켓은 3만원이나 했습니다. 전 운좋게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빌스마의 연주는 2 종 모두 CD로 들어 본 경험도 있고, 또 다 들은 후 가장 잘 연주한 바흐라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묘하게 세부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연을 듣는 내내 레퍼런스의 부재로 말미암아 다소 명확치 못한 상태에서 그 연주를 들어야 했었습니다.
우선 연주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여유롭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곡을 연주하는 연주가가 흔히 가질 수 있는 긴장과 같은 것은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그냥 활을 가볍게 들고 한번 해볼까..란 기분으로 유유히 곡을 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대가의 존재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하면 담배연기 흩날리면서 고고히 첼로를 켜는 카잘스의 모습을 뇌리에서 지우기 힘든 저로서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습니다.
연주는 우선 자유로운 템포 설정이 기억이 납니다. 1번 프렐류드는 상당히 느리게 진행이 되었고, 반면에 지그는 상당히 빨랐습니다. 사라방드의 경우 중도적이었고요. 하지만, 전체적인 조감을 할 정도로 곡을 잘 모르고, 또 그의 연주에도 그렇게 익숙치가 않아서 좀 더 기준이 분명한 이야기를 못 하겠군요. 이 점, 상당히 아쉽습니다.
3번은 세련된 그의 레코딩 그대로의 연주였습니다. 프렐류드부터 날렵하게 움직이는 그의 보잉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특히 다운,업,다운의 변화를 레가토를 살려서 한 마디안에서 바꾸는 지그에서의 보잉은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직 몸이 덜 풀려서인지 간간히 건들여서는 안될 현을 건들여서 소리가 뭉게지는 경우도 간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보잉은 전체적으로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5번의 프렐류드는 인터미션 때의 기대와는 달리 빠른 편이었습니다. 카잘스의 것과 같은 비감 넘치는 사색 대신에 부드러운 명상..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그런 연주였죠. 그리고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분도 말씀하셨듯이 저도 이 연주를 들으면서 순간순간 오직 첼로만이 보이면서 내가 그 당시 왜 거기에 앉았는가도 잊고 그저 멍하니 첼로만을 바라보면서 앉아 있곤 했습니다. 라이브만의 그 긴장과 음악과의 일체감. 처음에는 각 악장(?) 별로 구분도 하고 흐름을 의도적으로 파악하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만, 결국 끝부분에 가서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음악만 듣고 있었습니다. 분명 집중력의 한계에 도달한 것도 이유가 됨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전 그보다는 웅혼한 음악의 흐름에 몸을 던졌다..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저도 확신이 안 섭니다만...
..일단 빌스마의 실연을 보았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이 있는 연주였습니다.
1999.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