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시험이 끝난 후여서 프로젝트가 없기 때문에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따뜻한 날씨와 함께 이러한 여유는 무척 좋다. 수업이 끝난 후 기숙사 침대에 누워 창밖의 햇살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들을 때, 창 밖은 키 큰 나무의 가지들로 풍성하고 이 나무들은 권태롭지만 충분히 멋진 푸른 빛을 띄고 흩날린다. 이러한 행복은 많은 이유로 순식간에 사라지곤 하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찰나의 그 행복감. 그조차도 없는 삶이 빈번히 우리를 짓누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튼 이러한 한가함을 틈타 오래간만에 페리어의 고별을 들었다. 슬픔이라는 간단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복잡한 느낌, 또 이 곡을 처음 들은 그 날의 그 기억. 또 작곡자의 심장병. 그리고 또다시 그의 9번 피날레. ..거기에서의 고별...이렇게 궤적을 그린다. 이렇게 그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의 음악에서는 흙냄새가 난다. '흙냄새가 나는 말러의 음악' 고등학교 1학년 때 노트의 한 구석에 이렇게 적은 기억이 난다. 당시에 이 작곡자를 누구처럼 절벽 너머에 서있는 신으로까지는 받아들일 수는 없었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이다. 내게 그는 약한 인간인 것이다. 죽음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악을 쓰다 결국은 포기한 인간. 우리 역시 죽음 앞에서는 항상 약해질 수 밖에 없기에 그의 음악은 혐오스럽지만 또한 매력적이다.
이야기가 거창해 진감이 있는데, 아무튼 이렇게 그는 봄의 정취와 더불어 죽음을 노래한다.
그리고 미완성으로 끝난 10번이 듣고 싶어진다. 어떤 음악일까?
1999.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