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처음에는 별 재미없이 들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꾸준히 계속해서 음악을 들었고, 어느 순간 이후 베토벤의 곡들에서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다른 어떤 종류의 음악도 줄 수 없던 그런 강하고, 내 영혼의 본질과 관련된 그런 것이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음악에 대한 집착은 사춘기 시절의 그 무엇인가를 향한 열정을 대신해 주었고, CD 들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음반 수집은 점차 다양해 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책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던 것이 이 시기 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인가 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음악에 대한 지식에 대한 열정, 또한 음반 그 자체에 대한 열정으로 전이되었다. 왜 이런 일이 있게 되었는지는...글쎄다. 나의 현학적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모든 것을 학습의 대상으로 삼고마는 모범생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후 나는 음악이 아니라 음반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늘어가는 음반 수에 비례해서, 용돈을 모아 원하는 곡을 찾기위해 다리품까지 팔아가면서 테이프를 모으던 당시의 그 집중과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해서 지금은 300 개가 넘는 음악 소스들을 가지고 있지만, 무언가가 듣고 싶을 때 그 많은 음반 속에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란 무척 힘든 일이 되었다.
정말로 음악을 열중해 들으면서 감동하던 그 시절의 그 느낌을 다시 한번 느껴 보고 싶다. 삶이란 그래야 한다.
1998.9.3